새벽무렵의 문화재 답사노트 :: 대구경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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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의사찰



 심우도 尋牛圖
작성자: 새벽무렵   등록일: 2005-01-26 14:51:18   조회: 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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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불교 선종화(禪宗畵).

본래 도교의 팔우도(八牛圖)에서 유래된 것으로 12세기 중엽 중국 송나라 때 확암선사(廓庵禪師)가 2장면을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그렸다. 도교의 팔우도는 무(無)에서 그림이 끝나므로 진정한 진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청거(淸居)선사가 처음 그렸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는 인간의 본성에, 동자나 스님은 불도(佛道)의 수행자에 비유된다. 중국에서는 소 대신 말을 등장시킨 시마도(十馬圖)가, 티베트에서는 코끼리를 등장시킨 시상도(十象圖)가 전해진다.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一. 尋牛(심우)


망망발초거추심 (茫茫撥草去追尋)
수활산요로갱심 (水闊山遙路更深)
역진신피무처멱 (力盡神疲無處覓)
단문풍수만선음 (但聞楓樹晩蟬吟)


망망한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노니
강물은 넓고 산은 험하여 길은 더욱 깊기만 하다.
힘이 다하고 기력이 떨어져 지쳐도 찾을 길이 없는데
다만 숲속 나뭇가지엔 매미 우는 소리만 들리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바로 자기를 찾는 결심의 단계를 말한다.


심우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 二. 見跡(견적)

수변임하적편다 (水邊林下跡偏多)
방초리피견야마 (芳草離披見也마)
종시심산갱심처 (縱是深山更深處)
요천비공즘장타 (遼天鼻孔즘藏他)

물과 나무 아래 수많은 발자국
풀이 우거졌으나 이를 헤치고 찾아본다.
비록 이곳이 산이 깊고 골짜기가 깊다 해도
요천(遼天)의 비공(鼻孔)이 어찌 그것을 감출 수 있겠는가


견적(見跡)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참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으로 상징해서 표현한 그림이다.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문제가 내 자신으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 三. 見牛(견우)

황앵지상일성성 (黃鶯枝上一聲聲)
일난풍화안류청 (日暖風和岸柳靑)
지차갱무회피처 (只此更無回避處)
삼삼두각화난성 (森森頭角畵難成)

나뭇가지 위에 지저귀는 금빛 꾀꼬리
따뜻한 날 화창한 바람에 언덕 위 버들가지 푸르네.
다만 이것이니 어찌 다시 회피할 것인가?
삼삼한 두각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노라.


견우(見牛)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 끝에 자기를 찾고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다.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은 우리의 감각(?)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四. 得牛(득우)

갈진정신획득거 (渴盡精神獲得渠)
심강역장졸난제 (沈强力壯卒難除)
시유재도고원상 (時有재到高原上)
우입연운심처거 (又入煙雲深處居)

정신을 가다듬어 소를 얻었지만
사납고 힘이 세어 다루기 어렵도다.
어느 때는 높은 산 위에 이르고
혹은 깊은 구름 속에 숨으려 한다.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경지를 선종(禪宗)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 속에서 아직 제련(製鍊)되지 않는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상태라고 한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한다. 아직 삼독에 물들어서 거칠고 일순간의 탐욕을 다스릴 길이 없다. 더욱 정진하고 공부에 힘써야 하는 상태이다.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 五. 牧牛(목우)

편색시시불리신 (鞭索時時不離身)
공이종보입애진 (恐伊縱步入埃塵)
상장목득순화야 (相將牧得純和也)
기쇄무구자축인 (羈鎖無拘自逐人)

채찍과 고삐를 쉼 없이 사용하여 곁에서 여의지 말라
그대가 한 걸음 한 걸음 애진(埃塵)으로 들어감이 두렵다
그러나 끌어내어 길들이고 순화되어
채찍과 고삐에 구애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사람 따르네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서, 자신을 다스리고 자기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단계다.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하였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나 아직 이 마음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동자승이 소에게 꼬뚜레를 꿰어 끌고 가고 있는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랜 동안의 습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



▣ 六. 騎牛歸家(기우귀가)

기우이려욕환가 (騎牛이麗欲還家)
강적성성송만하 (羌笛聲聲送晩霞)
일박일가무한의 (一拍一歌無限意)
지음하필고진아 (知音何必鼓唇牙)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네
강적의 피리 소리 저녁 노을 속에 울리고 있네
한 박자 한 곡조마다 무한한 뜻이 담겨 있으니
그 지음 어찌 헛된 말하리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이제 내가 내 마음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동자승은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드디어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 七. 忘牛存人(망우존인)

기우이득도가산 (騎牛已得到家山)
우야공혜인야한 (牛也空兮人也閑)
홍일삼간유작몽 (紅日三竿猶作夢)
편승공돈초당간 (鞭繩空頓草堂間)

소를 타고 본향으로 돌아오니
소는 간 곳 없고 사람은 한가롭다
해가 석 자나 떴는데도 늦잠을 자니 오히려 꿈이려니
소용없는 고삐와 채찍은 초당간에 던져두노라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애쓰며 찾던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본래의 자기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소를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 八. 人牛具忘(인우구망)

편삭인우진속공 (鞭索人牛盡屬空)
벽천요활신난통 (碧天遼闊信難通)
홍로염상쟁용설 (紅爐焰上爭容雪)
도차방능합조종 (到此方能合祖宗)

채찍과 소와 사람이 모두 공하니
맑고 푸른 하늘 먹고 높아 소식 전하기 어려워라
끓는 솥에 어찌 흰 눈이 남아 있겠는가
이에 이르러 비로소 조종(祖宗)과 하나가 되도다


인우구망(人牛具忘)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圓象)만을 그리게 된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주관적인 자신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본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를 모두 비웠으니 자타가 다르지 않고 내외가 다르지 않다. 전부가 오직 공(空)이다.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無)속으로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열려 있다.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 九. 返本還源(반본환원)

만본환원이비공 (返本還源已費功)
쟁여직하약맹롱 (爭如直下若盲聾)
암중불견암전물 (庵中不見庵前物)
수자망망화자홍 (水自茫茫花自紅)

본향으로 돌아옴도 이미 헛된 공이니
모두 장님과 귀머거리와 같이 되어
암자에 앉아 앞의 것을 보지 않아도
물은 저절로 잔잔하고 꽃은 스스로 붉다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한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모두 하나같이 사랑한다.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있는 여실한 모습,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낙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본다.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 十. 入廛垂手(입전수수)

노흉선족입전래 (露胸跣足入廛來)
말토도회소만시 (抹土塗灰笑滿시)
불용신선진비결 (不用神仙眞秘訣)
직교고목방화개 (直敎枯木放花開)

가슴을 헤치고 맨발로 거리에 서니
흙을 바르고 재투성이지만 얼굴 가득한 웃음
신선의 비결 쓰지 않고
바로 가르쳐 마른 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佛國)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흐른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아래는 오어사대웅전에 벽화로 그려진 심우도
양옆면과 뒷면에 그려져 있으며, 10장이 있지는 않다.






불상의 수인
탑의 구조와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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